세상의 모든 예술품을 한 곳에 몰아 넣는다고 위대한 박물관이 되진 않는다. 위대한 박물관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벽에 붙은 물건들이 아니라 박물관 큐레이터다. 어떤 품목을 놔두고 어떤 품목을 철거할지 결정하는 큐레이터의 몫이 크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박물관에는 벽에 붙어 있는 품목보다 붙어 있지 않은 품목이 훨씬 더 많다. 벽에 붙은 품목은 최고 중의 최고만 엄선한 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것만 남겨놓아야 한다. 그래서 버리고 단순화하고 정리할 게 없는지 늘 살펴야 한다. 한마디로, 박물관 큐레이터가 돼야 한다. 핵심 중의 핵심에만 집중하며 가장 중요한 것만 남을 때까지 버리고 또 버려라. 그러고 나서도 가지치기를 한 번 더 하라.
징거맨스(Zingerman’s)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델리 체인으로, 징거맨스가 이 자리에 오른 것은 자신을 박물관 큐레이터로 생각하는 가맹점 주인들 덕분이다. 그들은 무작정 선반을 채우는 게 아니라 엄선한 식품만을 내놓는다. 징거맨스가 판매하는 올리브유에는 각각의 병마다 설명이 있는데, 직원들이 직접 올리브유를 생산하는 농장에 찾아가 올리브를 따보고 엄선했기에 풍부하고 진한 향을 장담할 수 있다.
영화감독은 위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럭저럭 좋은 장면들을 잘라낸다. 음악가는 위대한 앨범을 만들기 위해 그럭저럭 좋은 곡들을 빼버린다. 작가는 위대한 책을 만들기 위해 그럭저럭 좋은 문장들을 잘라낸다.
책 한 권을 가장 빠르게 독파하는 방법으로 ‘표저머맺-목다본다’를 소개한다. 표지, 저자 소개, 머리말, 맺음말, 목차, 다시 보기, 본문, 다음 책 찾기 순서로 책을 읽는 것이다.
‘표지’에선 주제와 키워드를 확인하고, ‘저자 소개’에선 배경(내용을 전개하는 근거가 경험, 연구(이론), 조사, 인터뷰 등인지 가늠할 것)을 살펴보고, ‘머리말’에선 집필 동기, ‘맺음말’에선 독서 후의 효과 등을 압축적으로 확인한다. ‘목차’를 보며 책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구성*정리되어 있는지 알아보고, ‘다시’ 목차를 확인하면서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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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 읽는 법
“저자나 역자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표지의 느낌도 저한테는 참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저자와 편집자가 이 책을 어떤 색깔로 독자에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지요.” (by 작가 목수정)
제목, 부제목을 살펴본 다음엔 띠지, 뒤표지 순서로 본다. 앞표지에선 나에게 필요한 주제가 맞는지, 내가 찾는 키워드를 포함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제목이나 부제목보단 띠지를 주의해서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띠지는 책의 광고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독자에게 가장 어필하고 싶은 지점을 모아놓은 압축이라고 할 수 있다.
표지는 첫인상과 같은데 짧은 순간 ‘내 책’이 될 가능성이 있는 책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 책에 대해 가진 궁금증, 그것이 바로 표지를 읽는 태도이다. 주제와 키워드, 난이도를 짐작해보고 띠지와 뒤표지를 통해 내가 이 책에서 진짜로 얻을 수 있는 내용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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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머리말 읽기
머리말은 저자가 독자에게 말을 처음 거는 부분이며, 이 책을 독자가 어떻게 읽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보통은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나 배경, 전체 내용에 대한 요약, 책의 의의 등이 포함돼 있다.
빠르게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가 어떤 이유로 책을 썼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머리말을 읽으면 독후 효과 뿐만 아니라 주제가 어떻게 진행될지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 책 내용을 요약해주는 부분이 있다면 더 좋다. 전반적인 흐름과 주요 부분을 짐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덧붙여 머리말을 통해 본문에서 어떤 문체로 이야기할지 엿볼 수 있다. 사람과 대화할 때도 말투에 따라 사람의 인상이 바뀌는 것처럼 책도 비슷하다. 간결하고 명료하게 말하는 문체가 있고, 비록 길더라도 비유와 사례를 알맞게 섞어가며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체가 있다. 머리말을 읽으며 이 책이 내가 읽는 호흡과 궁합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도 책 선택에 도움이 된다. 참고로 머리말을 읽을 땐 다음과 같은 부분에 중점을 두면 효과적이다.
저자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일까?
저자는 왜 이 책을 쓰게 된 걸까?
저자가 집중한 부분은 무엇일까?
저자가 연구를 통해 알아낸 부분은 무엇일까?
저자의 개선 방안은 어떤 효과를 가져왔을까?
잘 짜인 머리말 그 자체가 책 한 권을 읽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니, 저자가 공들여 쓴 머리말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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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읽기
책에도 결승선이 있는데 바로 맺음말이다. 맺음말에는 책이 지향하는 방향이나 책을 통해 독자가 얻어낼 수 있는 효과나 성과 등이 나타난다. 이 역시 목차와 본문에서 우리가 필요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게 하는 유용한 팁이 된다.
머리말과 차이점이 있다면 맺음말은 책을 다 집필하고 난 저자의 솔직한 심경을 엿볼 수도 있다. 책의 맺음말은 책을 어떻게 썼는지 그 과정이 응축돼 있는 경우가 많고, 책에서 독자가 얻어야 할 성과에 대한 저자의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하며, 부족한 부분에 대한 저자의 반성이 들어 있기도 하다.
맺음말은 독서에서 일종의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책의 머리말 혹은 목차가 나침반이라면 맺음말은 우리가 책을 통해 얻어내야 할 북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서둘러 본문을 읽으려 하기 전에 천천히 맺음말로부터 읽으며 책의 방향성을 확인하는 기회를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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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보면서 ‘내 것’을 찾기
목차는 보통 4쪽 내외라서 무시할 수도 있는 분량이지만, 목차에 담긴 의미는 그렇지 않다. 이 4쪽은 300쪽 정도의 단행본 내용을 가장 간결하게 짐작해 볼 수 있는 지도와 같으니 충분히 음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목차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단순히 내용을 열거하는 목차와 처음에서 끝으로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목차가 있다.
내가 바라는 내용이 목차에 있는지 우선 살펴보자. 책의 목차에서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아직 모르고 있는 것, 자신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을 구분하는 것은 책 한 권을 선택함에 있어 필수 과정이다.
내가 찾는 내용에만 국한하지 않고 열린 자세로 자신의 생각이나 방식과 다른 목차를 체크하는 것도 좋다.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고자 하는 ‘인풋(input)’을 위한 독서를 원한다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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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면서 저자의 의도 점검하기
목차까지 체크했다면 다시 표지로 돌아와서 표지, 저자, 머리말, 맺음말, 목차 순서로 반복해서 다시 한 번 스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표지에서 생각했던 주제와 키워드, 저자 소개에서 생각했던 주제를 전개하는 이론적 배경, 머리말과 맺음말에서 짐작한 집필 계기와 독후 효과가 목차에서 말하는 책의 내용과 일치하는지 살펴보자.
이 정도 살펴보면 자신이 읽을 만한 책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책을 가장 빨리 독파하는 방법은 우선 내 필요에 꼭 알맞은 책을 선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독서에 대한 열의와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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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과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열고 책을 읽을수록 더 많은 생각과 지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빨강머리 앤>을 보다가 불현듯 깨달은 건, 나는 여전히 앤을 사랑하지만 지금은 앤만큼이나 마릴라 아줌마 역시 좋아하게 됐다는 점이다. 어릴 적엔 마릴라 아줌마가 그렇게나 야박해 보이고 싫었는데, 이제는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수다쟁이에 사고뭉치였던 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아이였다. 그리고, 마릴라 아줌마는 표현하는 방법이 매튜 아저씨와 달라서 그렇지 따뜻하고 올곧은 사람이었다.
<아기 공룡 둘리>의 고길동이 인간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거라던데,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밤낮없이 일에 찌들어 신경질 대마왕이 된 소시민 고길동의 삶이 이제야 내 눈에 밟힌다. 고길동 입장에서 보면, 허락 없이 대뜸 남의 집에 쳐들어와 식객이 된 둘리가 얼마나 미웠을까. 고길동에게 둘리는 여간 낯선 존재가 아닌데(심지어 공룡!), 가장으로서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만 치는 둘리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고길동이 내 친구라면 조용히 효자손 하나 건네주고 싶다. 둘리, 도우너, 또치, 희동이가 합심해서 괴롭히면 효자손으로 등 긁는 척 하다가 꿀밤 한 대씩 먹여주라고 말이다.
몇 년 전,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라는 에세이집을 냈고, 서문에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들 속에서도 시간의 주름을 본다. 눈에 보일 리 없는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리 없는 것들이 들리기 시작하면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고 썼었다.
그 말을 쓸 땐 마릴라나 고길동에 대한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지만, 이제 그들의 늙은 주름과 삶의 궤적들이 보인다.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행동이 이제 조금씩 이해된다. 사람을 빠르게 치려다 오타가 나면 삶이 된다.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실은,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들은 사람들이 수없이 내고 있는 오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백영옥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중에서!!
(^-^)어른의 시간이 시작되면 비록 암기력, 기억력은 떨어져도...이해력의 깊이가 일취월장할 수도!
앤은 대학 진학을 원했기 때문에 매튜 아저씨와 마릴라 아줌마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앤의 절친 다이애나는 대학 진학 대신 고향에 남기로 했다. 앤이 원했던 것은 독립된 직업이고, 다이애나가 원했던 것은 결혼이었다.
중고등학교나 대학 강연을 가면 꼭 나오는 단골 질문이 있다. ‘저는 연기를 하고 싶은데 부모님은 의대에 가길 원해요.’와 비슷한. 사실 이 질문의 카테고리에는 이상과 현실이 있다.
꿈과 현실, 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나는 그런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우리네 삶이 두부를 자르듯 명확히 잘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살면서 어떤 종류의 고통을 참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좋은 글을 쓰겠다는 건 매일 원고지를 채우겠다는 의미이고, 작가가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하루 10시간 이상 앉아서 글을 써야 한다는 걸 뜻한다. 글을 쓰다 보니 생긴 손목터널증후군, 허리디스크, 좌골신경통을 직업병으로 달고 살아야 함이다. 물론 편집자의 원고 독촉 전화와 오타와 비문을 지적하는 독자들, 출판 계약이 뜻대로 되지 않아 생기는 굴욕과 궁핍한 생활을 견디는 것도 포함된다.
내가 아는 작가 중, 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진 작가는 셀 수 없이 많다. 전업 작가의 길은 멀고도 험해 작가이면서 마트 직원이거나, 경비원이거나, 학원 강사이며 방과 후 글짓기 선생님이 태반이다. 가수나 화가가 되겠다는 것 역시 끝없이 이어지는 연습과 가난해져도 꿈을 버리지 않겠다는 심정적 결단을 뜻함이다.
무엇을 원한다는 건 그것에 따른 고통도 함께 원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한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앤은 원하는 직업을 얻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사랑하는 아줌마, 아저씨와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는 슬픔을 겪을 것이다. 다이애나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연애의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망설이는 까닭은 그 결정으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몫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우리이며,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스스로의 몫이다. 소설가 김훈이 말했다. “물고기가 낚시 바늘을 물지 않고 낚싯밥을 먹을 순 없다.”
모든 선택은 위험한 것이며, 그것이 선택의 본질이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
--백영옥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중에서!!
(^-^)스스로 선택한 만큼 스스로 책임지는 게 당연한 인생의 법칙! 선택도 책임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지만,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캡틴!! 힘내자, 캡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