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휴먼을 만드는 기술은 더 쉬워지고 저렴해지고 있다. 포트나이트 게임의 개발사인 에픽게임즈는 누구나 자신만의 디지털 휴먼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메타휴먼 크리에이터’의 얼리 액세스 버전을 무료로 공개했다.이 버전의 장점은 ‘시간’이다. 몇 주에서 몇 개월 소요되던 시간을 단 한 시간 이내로 단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는 에픽게임즈의 게임 엔진인 ‘언리얼’에서 사용하거나 마야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편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개인들도 자신의 모습은 물론, 원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의 모습을 메타휴먼 크리에이터로 만들 수 있고, 회사는 자신의 회사를 대표하는 버츄얼 인플루언서를 쉽게 만들 수 있다. 망설이지 말고 지금 바로 시도해 보자.
첫째,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진짜가 아닌 가짜라 하더라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가질 수 있고, 진짜처럼 행동하는 한 이들은 가상의 세계에서는 진짜 캐릭터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찍은 사진 역시도 하나의 정지된 사진으로 인스타그램에 남지 않는가? 게다가 여느 스타와 다르게 꽤 친절하게 댓글에 답을 해주기도 한다.
만약 LG의 김래아와 인스타그램 친구인데, 게임 속에서 각각 아바타로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반갑겠는가? 김래아는 LG에서 만든 동물의 숲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활동했다. 블랙핑크는 제페토에서 팬 사인회를 열었다. 메타버스의 세상에서는 이런 일들이 충분히 가능하다.
둘째, 사람 인플루언서들에 비해 관리하기가 쉽다.연예인들을 회사의 대표 모델로 기용할 경우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음주운전을 할지도 모르고, 폭력을 휘두를지도 모르며, 정치성향의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은 다르다. 회사에서 직접 관리해 만든 캐릭터이기 때문에 사생활이 깨끗하고 문제가 없다.
셋째, 다양한 회사와 쉽게 콜라보를 할 수 있다.가상의 캐릭터들은 제품 협찬을 받기도 편하고, 가상의 캐릭터들끼리 함께 모이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각각의 3D 애니메이션 작업에는 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겠지만, 메타버스의 시대에 이들이 가상세계에서만큼은 현실 세계의 셀럽 그 이상의 인기를 가지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뽀키는 어떨까? 아뽀키를 만든 에이펀인터렉티브는 2021년 3월 라인프렌즈와 협업을 맺었다. 앞으로 아뽀키의 유튜브에 라인프렌즈 캐릭터들이 등장할 수 있고, 라인프렌즈를 통해 아뽀키의 캐릭터 상품이 제작되어 팔리게 될 수도 있다.
현실 세계 개개인들의 모습을 디지털화한 우리의 화신이 ‘아바타’라면 버츄얼 인플루언서들은 메카버스의 세계에서 셀럽으로 먼저 자리잡을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도 메타버스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 아바타’라면 어떨까? 롤플레잉게임(RPG)에서 NPC라고 불리는 캐릭터들이 정말 사람처럼 행동할 때 우리는 플레이어와 아바타를 구분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몬스터헌터라는 게임에서는 몬스터를 잡다가 혼자 힘으로 안 될 때면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그럼, 소위 ‘고인물(한 게임을 오래 한 플레이어들)’들이 접속해 함께 사냥해 주는데, 말을 걸러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에는 이들이 사람(플레이어)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현재는 100% 플레이어들만 함께 사냥하고 있다) 이외에 수많은 게임들에서 ‘파티’로 함께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사람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2020년 12월 ‘이루다’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챗봇이 페이스북에 나타났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어 대화를 해 본 사람들은 마치 친구나 동생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개발사의 카카오톡 대화 무단 수집과 개인정보 노출 이슈로 인해 금방 서비스가 종료되었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페토는 혼자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도 어색하지 않도록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아바타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고도의 인공지능이 얹어지게 된다면 제페토 안에서 상담사로도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아예 아바타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말하며, 스스로 행동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이미 1998년 사이버 가수 ‘아담’을 만났다. 다만 아담은 목소리를 합성한 건 아니고 실제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가수의 목소리를 빌려 컴퓨터 그래픽을 입혔다.
꾸준히 앨범 활동을 하던 아담은 제작비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활동이 줄어들었고, 2016년 키다리 펀딩 프로젝트를 통해 리부트 콘서트를 가지기로 했으나 안타깝게도 실현되지 못했다.
현재 이들을 지칭하는 가장 어울리는 표현은 ‘버츄얼 인플루언서’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건 ‘릴 마켈라’로, 인스타그램 팔로우 306만, 유튜브 구독자 26만의 슈퍼스타이자 2018년에는 온라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중 한 명으로 타임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런데 릴 마켈라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와, 진짜 사람 같다’라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니라 ‘뭔가 상당히 티나는 게임 캐릭터’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왜 인기가 있는 걸까?
캐릭터는 현실적이지 않아도, 그녀가 입고 있는 옷, 장신구, 자주 가는 장소들이 핫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실 세계의 장소에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사람’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하거나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상당히 사실적이다. 심지어 인터뷰 영상은 곁에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2016년에 탄생해 릴 마켈라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수익은 1,170만달러(약 130억 원), 한 번 포스팅에 드는 금액은 8,500달러(900만 원)가 넘는다. 사이버 인플루언서이다 보니 재주가 많다. 스포티파이에 앨범을 낸 뮤지션이기도 하고, NFT 아트 플랫폼 슈퍼레어에 ‘Rebirth of Venus’라는 작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일본에는 ‘이마(imma)’가 있다. 팔로우 수는 약 33만 명이다. 릴 미켈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그래픽을 보여주고 있다. 2020년에는 이케아와 손을 잡고 하라주쿠 매장에 영상이 전시됐다. 거의 <나 혼자 산다>처럼 일상이 공개되는 것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영상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이 있다. ‘김래아’는 미래에서 온 아이라는 뜻으로, LG에서 만든 인플루언서다. 활동 기간은 1년이 넘었는데, CES 2021에서는 LG전자의 노트북 등 제품 발표를 맡아 진행하기도 했다. 팔로우 수는 9,000명으로, 해외 유명 인플루언서에 비해 아직은 적은 편이다.
아예 다른 캐릭터들도 있다. 누가 봐도 가상의 캐릭터인데, 현실 세계의 가수보다 인기가 많은 구독자 28만 명의 토끼인간 APOKI다. 아뽀끼는 실제 성우가 목소리와 모션 캡쳐를 한 캐릭터로, 억지로 사람의 모습을 닮게 하지 않았고 누가 봐도 애니메이션인 걸 알게 만들었다. 얼굴 없는 가수라는 입장에서 ‘아담’과도 비슷하고,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리즈 에피소드 중 ‘왈도의 전성시대’의 왈도와도 닮았다.
유튜브를 무대로 활동하는데, 주로 올라오는 영상은 다른 가수의 노래를 재해석해 따라 부르는 ‘커버송’, 춤을 따라 추는 ‘커버댄스송’ 그리고 실시간 라이브 방송도 진행한다. 실시간 라이브가 가능한 건 사람이 직접 움직이는 걸 모션 인식하기 때문이다. 가끔 집들이와 같은 콘텐츠를 올려 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루이는 디오비스튜디오에서 만든 캐릭터인데, 얼굴 없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영상에 인공지능이 제작한 얼굴을 붙인 딥페이크 기술로 만들어졌다. 밀려오는 인기를 감당하지 못해 홈페이지에는 ‘천천히 답변한다’는 공지와 함께 2022년 7월에 개인 서비스를 런칭한다고 발표했다.
